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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역사

헐리우드탄생기 2

인싸가 되기 위한 상식 2020. 5. 22. 21:21

 

 

그렇게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태어난 헐리우드의 이면에는 엄청난 암투와 역사가 있었다. 당시 헐리우드가 태동하기 전 MPPC(The Motion Picture Prop Company)가 있었다. 이곳은 프랑스영화의 미국진출을 막기 위한 일종의 특허회사였다. 여러 회사가 모인 형태의 회사였고, 자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당시 뤼미에르를 비롯해 멜리어스는 미국에 진출하여 영화산업을 더 키워보고자 했다. 그리고 영사기를 들고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돈을 받고 영화를 상영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이를 보고 가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MPPC가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영화는 미국시장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고, 미국 영화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MPPC는 더 이상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성장하고 있었다. 일종의 담합을 한 것이다. 일종의 건설사 담합처럼 밀어줄때 밀어주고, 영화 장비, 배급 날짜 등등 확실히 서로를 챙겼다. 그러나 담합이 이루어진 만큼 회원사가 아닌 영화사에는 상당한 불이익이 생겼고, 결국 미국 영화계는 독립영화 시스템과 헐리우드 시스템으로 양분된 것이다. 

 

 

 

 

한편, 미국영화시장을 잠식하기 위한 프랑스 영화업자들의 진출은 미국영화계를 자극시키는 촉매제였다. 당시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영화인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장비를 들고 다니며 장소를 빌려 영화를 상영했다. 이때 미국 영화업자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사업을 해보고자 했다. 일단 장비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한장소에서만 영화를 상영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로 한 것이다. 이에 이른바 니켈로디언이 탄생한다. 

 

 

 

니켈로디언은 상설영화관으로 영화업자들이 부동산을 매입하여 만든 영화관이다. 오센트면 영화를 즐길 수 있어, 비교적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오센트짜리 동전이 니켈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니켈로디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미국의 유흥업소는 일종의 쇼형태로 진행되었다. 무희들의 춤, 가수의 노래, 밴드의 연주가 어우러진 형태의 쇼 문화였던 터라, 유흥문화를 즐기려면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다. 이에 영화는 저렴한 볼거리였고, 맥주를 마시기 전 흥미로운 오락거리였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영화만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도 없다. 무엇보다 상상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 당시만 해도 미국와 프랑스 영화계는 대립하는 양상이었던 점이 매우 흥미롭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영화계는 아직도 미국 영화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프랑스인들은 미국인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영어를 하지 않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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